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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이란이 미국 월드컵에 온다 — 2026 북중미 월드컵의 가장 기이한 드라마

전쟁 중인 이란이 미국 월드컵에 온다 — 2026 북중미 월드컵의 가장 기이한 드라마

세계 스포츠 역사상,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한 나라가, 자신과 전쟁 중인 나라의 땅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출전한다. 2026년 6월, 정확히 그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이 6월 11일 개막한다. 미국·캐나다·멕시코 공동 개최, 사상 처음 48개국이 겨루는 대회다. 그런데 그 출전국 명단에 — 올해 2월부터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의 이름이 올라 있다.

적국의 땅에서 공을 차야 하는 팀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월드컵 경기 상당수가 미국에서 열린다. 미국과 미사일을 주고받은 나라의 선수단이, 그 미국 땅에 들어가 공을 차야 한다는 뜻이다.

이란 축구협회는 결국 베이스캠프를 옮기기로 FIFA와 합의했다. 당초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 차리려던 캠프를 — 국경 너머 멕시코 티후아나로 이전한 것이다.

운영 방식은 더 기이하다. 이란 대표팀은 평소 멕시코 티후아나에 머물다가, 경기 일정에 맞춰 미국으로 건너가 경기를 치르고, 끝나면 다시 멕시코로 돌아온다. 말 그대로 — 국경을 출퇴근하는 월드컵이다.

적국에 숙소를 둘 수 없어, 옆 나라에서 매번 국경을 넘어 경기하러 가는 대표팀.

선수 한 명 한 명이 매 경기 입국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이동 동선 곳곳에 경호가 따라붙는다. 컨디션 관리가 생명인 대표팀에게, 경기 때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일정은 그 자체로 엄청난 핸디캡이다. 훈련과 회복의 리듬이 — 정치와 국경 앞에서 매번 끊기는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배경에는 올해 2월 시작된 전쟁이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불붙은 이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유가 폭등으로 세계 경제까지 흔들었다. (☞ 관련 글: 호르무즈가 다시 열린다)

전쟁은 곧 월드컵 출전 자체를 위협했다. 미국과의 외교 갈등, 비자 문제, 그리고 선수단의 신변 안전.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는 이란 선수들이 미국에 입국할 경우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중인 두 나라가, 같은 대회의 주최국참가국으로 만나는 — 전례 없는 외교적 난제였다.

"예정대로 참가한다" — FIFA의 결단

FIFA의 입장은 분명했다. 이란은 예정대로 월드컵에 참가한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일부 추측을 일축하며 이란의 출전을 못 박았고, FIFA는 대회를 앞두고 이란과 직접 회담까지 가졌다. 스포츠가 정치에 휘둘려 한 나라의 출전권을 박탈하는 선례를 —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베이스캠프 멕시코 이전은, 그 의지를 현실에서 작동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출정식에 울려 퍼진 구호

그러나 갈등의 온도는 그라운드 밖에서 여전히 뜨겁다.

이란 대표팀의 월드컵 출정식은 — 전쟁 집회를 방불케 했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미국에 죽음을" 같은 구호가 울려 퍼졌다. 미국 땅에서 공을 차러 가는 팀의 출정식에서 나온 구호치고는 — 섬뜩할 만큼 모순적이다.

이것이 2026 월드컵이 안고 있는 진짜 긴장이다. 공을 차는 것은 22명이지만, 그 등 뒤에는 전쟁 중인 두 국가의 감정 전체가 실려 있다.

28년 전, 같은 두 나라가 만났을 때

흥미롭게도, 미국과 이란이 월드컵에서 맞붙은 적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에도 두 나라는 적대 관계였고, 그 경기는 대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한 판으로 불렸다. 그런데 경기 직전, 이란 선수들은 미국 선수들에게 흰 장미를 건넸다. 두 팀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경기는 이란의 2-1 승리로 끝났다.

그날의 흰 장미는 — 적대의 한복판에서도 스포츠가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화해의 상징으로 오래 기억됐다.

28년 뒤, 같은 두 나라가 — 이번엔 실제 전쟁 중에 다시 만난다.

그때의 흰 장미가 다시 등장할지, 아니면 출정식의 구호가 그라운드를 덮을지 — 아무도 모른다.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축구 팬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시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 올라, A조에서 멕시코·체코·남아프리카공화국과 겨룬다. 같은 대회, 같은 하늘 아래에서 — 우리 대표팀도 뛰는 것이다.

전쟁과 정치가 그라운드의 문턱까지 밀려온 이번 대회는, 어쩌면 축구가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다시 던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포츠는 종종 정치를 잊게 해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2026년의 이 장면은 정반대다. 정치와 전쟁이, 스포츠를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이 미국 땅에서 공을 찬다는 이 한 문장은 —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모순을 압축하고 있다. 국경을 출퇴근하는 선수들,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 그리고 "죽음을" 외치는 출정식.

그럼에도 공은 굴러갈 것이다. 6월 11일, 휘슬이 울리면.

어쩌면 그 공이 굴러가는 90분 동안만큼은 — 28년 전 흰 장미처럼, 전쟁이 잠시 숨을 멈추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번 월드컵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