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중 의식이 깨어있던 환자가 본 것
수술대에 누운 사람은 — 깊은 어둠 속에 있다.
전신마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 의식은 사라지고, 시간은 건너뛰고, 환자가 깨어났을 때 수술실의 풍경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마취에 대해 가진 일반적인 그림이다.
그런데 — 매년 수천 명의 환자가, 이 그림과 어긋난 경험을 보고한다.
수술 중에 자신의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는 환자들. 자신의 심장이 멎은 동안 의료진이 한 말을 정확히 인용한 환자들.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야 했던 시점의 일을 — 깨어난 뒤 세부까지 기억하는 환자들.
이 보고들은 오랫동안 환각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2014년, 한 연구가 이 분류를 흔든다.
AWARE 연구
영국의 중환자 의학자 *샘 파니아(Sam Parnia)*가 이끈 AWARE(AWAreness during REsuscitation) 연구는, 의학사에서 처음으로 임사체험을 통제된 조건에서 검증하려 한 시도였다.
연구는 영국·미국·오스트리아의 15개 병원에서 4년간 진행됐다. 대상은 —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들. 그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140명. 그 중 — 46명이 어떤 형태의 인지 경험을 보고했고, 9명은 명확한 임사체험을, 그리고 2명은 — 의학적으로 불가능해야 할 관찰을 보고했다.
그 2명 중 한 사람의 이야기는 — 의학계를 흔들었다.
천장에서 본 풍경
미국에서 심정지를 겪은 한 57세 남성 환자는, 깨어난 뒤 의료진에게 — 심정지 동안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위에서 모든 것이 보였다. 간호사가 내 가슴을 누르는 모습, 다른 사람이 모니터를 보며 충격을 줘야 한다고 말한 것, 자동제세동기에서 기계음이 세 번 났던 것. 그 모든 것이 — 마치 천장 쪽에서 보는 것처럼.
문제는, 그가 묘사한 모든 디테일이 — 심정지 기록과 일치했다는 것이다. 시간, 순서, 사용된 장비, 의료진의 대화 — 그 사람이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야 했던 약 3분간의 일을 —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뇌파는 그동안 — 평탄선이었다.
무엇이 이 보고를 특별하게 하는가
이런 보고는 사실 — AWARE 이전부터 수십 년간 있어왔다. 다만 의학계는 이를 주관적 환각으로 분류해 왔다.
AWARE 연구의 특별함은 — 이 보고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참여 병원의 천장 위, 즉 바닥에 누운 사람의 시야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위치에 —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설치했다. 만약 환자가 정말로 천장에서 본 시선을 경험했다면 — 그 그림을 봤어야 한다.
결과는 — 아무도 그 그림을 보지 못했다. 임사체험을 보고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러나 이 결과를 임사체험이 환각이라는 증거로만 읽기에는 — 그 위의 남성 환자의 사례가 너무 정확했다. 그가 설명한 일들은 — 천장 그림을 볼 수 없는 위치, 즉 수술대 바로 위에서 본 시야와 일치했다. 그가 천장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슷한 보고들
AWARE 이전에도 — 의학 문헌에 남은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1년, 애틀랜타. 마리아(Maria)의 신발. 심정지로 응급실에 실려온 한 환자가, 깨어난 뒤 병원 건물 3층 외벽 창문턱에 테니스 신발 한 짝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가 직접 올라가 확인해보니 — 그 위치에, 환자가 말한 색깔과 모양의 신발이 있었다. 그녀는 그 건물에 그날 처음 방문한 환자였다.
2001년, 네덜란드. 폼 판 롬멜(Pim van Lommel)의 랜싯 논문. 심장 전문의 폼 판 롬멜은 랜싯(Lancet) 저널에 — 10개 네덜란드 병원에서 심정지 후 소생한 환자 344명 중, *18%*가 임사체험을 보고했다고 발표했다. 그중 일부는 — 깨어난 뒤 의료진이 잃어버린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 보고들은 — 한 사례면 우연, 두 사례면 기억의 재구성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건이 누적되면 — 무언가 체계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가설이 무게를 얻는다.
회의론자들의 답변
물론 이 현상에 대한 과학적 회의론도 분명하다.
회의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 심정지 직전·직후에 환자는 의료진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청각은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감각이고, 무의식 상태로 보이는 환자도 청각 정보를 암묵 기억에 저장할 수 있다.
- 기억은 재구성된다. 깨어난 환자는 — 자신이 의식이 없을 때 일어난 일을, 깨어난 뒤 들은 정보·상상·기존 지식으로 재구성해 기억을 만들 수 있다.
- 우연 일치는 일어난다. 수천 명의 환자 중 한두 명이 맞춘 묘사는 — 통계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 반박들은 — 모두 타당하다. 그리고 위의 사례들이 임사체험이 진짜라는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다만 — 모든 사례를 위의 세 가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환자가 암묵 기억으로 저장할 수 없는 시각 정보(천장 너머의 신발, 수술실 다른 방의 장비)를 정확히 묘사한 경우. 그것이 —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이다.
의식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 모든 사례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 결국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다.
의식은 — 뇌에서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뇌를 통해 흐르는가?
전통적인 신경과학의 답은 첫 번째다. 의식은 뇌의 산물이고, 뇌가 멎으면 의식도 멎는다. 이 그림 안에서 — 뇌가 멎은 동안 본 풍경은 존재할 수 없다.
AWARE 연구를 비롯한 임사체험 보고들이 — 흔드는 것이 이 그림이다. 만약 의식이 뇌의 산물만이 아니라면 — 뇌가 잠시 멎은 시간에도, 의식의 어떤 흐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샘 파니아 본인은 — 이 결론으로 바로 가지는 않는다. 그는 신중하다. 다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가를 — 우리가 생각해 온 것보다 훨씬 덜 안다. 그리고 그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더 정확한 과학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는가
이 연구들이 — 사후 세계가 있다거나 영혼이 있다는 증명은 아니다. 그것은 — 데이터가 아직 닿지 않은 영역이다.
다만 한 가지 —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
의식이 완전히 꺼지는 그 순간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 훨씬 덜 갑작스러울지도 모른다.
수술대 위의 환자가, 심정지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몸을 위에서 내려다본 그 풍경. 그 풍경이 환각인지 실재인지 — 우리는 아직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풍경을 본 환자들이 일관되게 보고하는 한 가지가 있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 깊은 평온과 따뜻함. 자신의 몸을 위에서 보면서도, 그것이 끔찍하지 않았다는 것. 그 시간이, 그들이 평생 경험한 어떤 순간보다 조용하고 명료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이에게
당신이 사랑한 사람이 — 수술 중에 떠났거나, 의식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면 — 종종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알았을까. 외로웠을까. 두려웠을까.
AWARE 연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풍경은 — 그가 알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변을 인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 그가 인지했다면, 그것은 두려운 풍경이 아니었다는 것.
당신이 그의 손을 잡았던 그 시간,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였던 그 시간 — 그가 어딘가에서,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함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우리는 이제 작은 신뢰로 안을 수 있다.
이것은 종교적 위안이 아니다. 측정 가능한 데이터가, 조심스럽게 — 그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술 중 의식이 깨어 있던 환자들이 본 것은 — 어쩌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의 진짜 모양에 대한 한 조각의 단서일지도 모른다.
그 모양은 — 우리가 두려워해 온 것과 다르다. 단절이 아니라 연속에 가깝고, 어둠이 아니라 부드러운 시야 전환에 가까우며, 외로움이 아니라 깊은 평온에 가깝다.
이것이 — 수십 년간 의식의 가장자리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일관되게 우리에게 전해준 풍경이다.
당신이 언젠가 그 자리에 누울 때 —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미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 우리에게 그 시간이 평온했다고 말해주고 돌아왔다.
그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 마지막 수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