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세네카가 친구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

서기 1세기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친구 루실리우스(Lucilius)에게 124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들은 Epistulae Morales라는 이름으로 묶여 —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읽힌다.

그중 한 편지는,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보낸 위로의 글이었다. 이 편지에서 세네카는 — 슬픔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도 따뜻한 조언을 남겼다.

오늘은 그 편지를 함께 읽어보자.

"슬픔을 멈추라고 하지 않겠다"

세네카는 편지의 첫머리에서 — 일반적인 위로의 말을 거부한다.

친구여, 나는 그대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인간적인 일이 아니다. 친구를 잃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 사랑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 첫 문장만으로도, 세네카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는 슬픔을 철학적 결함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슬픔을 —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았다.

스토아 철학은 종종 감정을 억제하는 차가운 철학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진짜 스토아는 그렇지 않다. 진짜 스토아는 —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그 감정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세네카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다만 —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한 만큼 슬퍼하고, 그 이상을 습관처럼 만들지는 말자.

이 부분이 핵심이다. 세네카는 슬픔에는 자연스러운 분량이 있다고 본다. 그것을 넘어서면 — 슬픔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충분히 슬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슬픔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그 슬픔은 떠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 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 사랑인 척하는 무엇이다.

이 통찰은 무겁다. 우리는 종종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 슬픔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세네카는 이것을 — 떠난 사람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말한다.

그가 진짜로 너를 사랑했다면 — 네가 그의 죽음 때문에 평생 망가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를 진짜로 사랑한다면, 네 슬픔을 그가 원했을 분량으로 다듬어라.

"그가 살았다는 사실"

세네카가 가장 자주 강조한 것은 이것이다.

너는 그를 잃었다는 사실에 매몰되지 말고, 그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이 작은 시각의 전환이 모든 것을 바꾼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없어진 것에 집중한다.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손,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더 이상 함께 못 갈 곳들. 그런데 세네카는 — 시선을 정반대로 돌리라고 한다.

그가 너의 인생에 없었던 시간을 떠올려 보라. 너는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 그 사람의 부재 때문에 슬프지 않았다. 만약 너희가 만나지 않았다면, 너는 평생 그의 부재를 슬픔으로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너의 슬픔은 — 그가 너의 인생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슬픔이다.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 선물의 다른 얼굴이다.

이 관점은 슬픔을 없애지는 않는다. 다만 슬픔의 을 바꾼다. 잃었다는 슬픔에서, 받았다는 감사로.

"시간이 너를 위로할 것이다"

세네카는 시간의 역할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말한다.

친구여, 시간이 흐르면 — 슬픔은 부드러워진다. 이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자비다. 부드러워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 수 있는 모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 약간 도발적인 말을 한다.

그런데 시간이 부드럽게 만들 슬픔이라면, 왜 처음부터 부드럽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시간이 가르쳐 줄 것을 철학이 미리 가르쳐 줄 수 있다. 그게 철학의 일이다.

이 말은 처음 들으면 차갑다. 어떻게 처음부터 슬픔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세네카의 의도는 — 슬픔을 처음부터 작게 만들라는 게 아니다. 그의 의도는 — 슬픔을 처음부터 제대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가르쳐 주기 전에 — 우리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무엇을 미리 알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 너도, 나도, 그도. 우리는 함께 죽음을 향해 가는 동행자였다. 그가 먼저 도착했을 뿐, 우리도 곧 따라간다. 그러니 그의 죽음은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 조금 먼저 떠난 동행자의 뒷모습이다.

한 가지 인용

이 편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랑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문장 안에 세네카의 모든 통찰이 압축되어 있다.

대상은 사라진다. 육체는 사라진다. 함께한 시간도, 그 시간의 장면들도 — 결국 사라진다.

그러나 사랑했다는 사실은 —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는 한 —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일어난 일은 우주에서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 한 구석에 작은 안도가 생긴다. 우리가 잃을 수 있는 것은 대상뿐이다. 사랑은 —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살아 있지 않은 뒤에도 —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세네카의 편지는 — 슬픔을 없애려는 글이 아니다. 슬픔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모양으로 다듬으려는 글이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인사하며 편지를 마쳤다.

친구여, 슬픔을 부정하지 말라. 그러나 슬픔의 주인이 되어라. 슬픔이 너의 주인이 되도록 두지 말라.

당신이 지금 누군가를 잃었다면 — 슬픔이 당신의 주인이 되도록 두지 말자.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되, 당신의 인생 전체를 내어주지는 말자. 그것이 떠난 사람이 진정으로 원했을 일이다.

그리고 가끔, 마음 안에서 세네카의 문장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랑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문장을 의지할 수 있다면 — 당신은 이미, 슬픔의 주인이 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