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통화가 평범했어도 괜찮다
사별 후 가장 깊은 후회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마지막 통화가 너무 평범했어요. 그냥 잘 자라고 하고 끊었어요.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더 좋은 말을 했을 텐데."
이 후회는 무겁다. 그리고 — 거의 모든 사별을 겪은 사람이 이 후회를 안고 있다.
오늘은 이 후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 왜 이 후회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영화 같은 마지막은 거의 없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늘 멋진 마지막을 맞는다. 임종 직전, 깊은 눈맞춤. 평생을 정리하는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 손을 꼭 잡은 마지막 순간.
하지만 현실의 마지막은 — 거의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마지막은 평범하다. 그저 평소처럼 잘 자라고 하고 끊은 통화. 평소처럼 다녀와요라고 하고 보낸 출근길. 평소처럼 다음 주에 봐라고 하고 헤어진 식사 자리.
그리고 그게 — 마지막이 된다.
갑작스러운 사고. 예고 없는 발작.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새벽의 정지. 인간의 죽음은 — 영화처럼 친절하게 마지막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 그 평범함이 진짜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마지막 통화가 평범했다는 사실에 후회가 깊어질 때, 우리는 종종 — 멋진 마지막이 가능했던 척한다. 내가 더 신경 썼더라면, 더 좋은 마지막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건 환상이다. 멋진 마지막은 마지막인 줄 알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 거의 모든 마지막을 모른 채로 보낸다.
오히려 — 평범한 마지막이야말로 가장 진실에 가깝다.
평생을 함께한 부모와의 마지막 통화가 평범했다는 것은 — 당신과 부모의 관계가 그만큼 일상이었다는 뜻이다. 평생 사랑한 친구와의 마지막 식사가 평범했다는 것은 — 당신과 그 친구의 우정이 그만큼 자연스러웠다는 뜻이다.
특별한 의식 없이도 —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는 것. 의도하지 않은 잘 자라는 인사가, 두 사람 사이에서 그만한 무게로 오갈 수 있었다는 것. 그게 바로 깊은 관계의 모습이다.
평범했다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충분함의 증거다.
후회의 함정
후회는 종종,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것처럼 과거를 다시 쓴다.
"내가 그날 더 좋은 말을 했더라면." "그날 한 번만 더 안아줬더라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이 모든 문장의 공통점은 —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을 마치 알 수 있었던 것처럼 가정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마지막인 줄 몰랐다. 알았다면 당연히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모르는 일을 모른 채로 보낸 것은 — 잘못이 아니다. 그건 인간의 조건이다.
후회의 함정은 — 우리에게 *전지(全知)*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인 줄 알았어야 한다고. 더 신경 썼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는 마지막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 후회를 내려놓는 첫걸음이다.
떠난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자. 만약 당신이 떠난 입장이라면 — 마지막 순간이 어떠했기를 바랄까?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평소처럼이었으면 좋겠다. 무겁지 않게, 의식하지 않게, 평소의 우리답게.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 마지막을 과장된 의식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지막이 평소의 결이기를 바란다. 그 평소의 결 안에 — 서로의 진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과 그 사람의 마지막이 평범했다면 — 그건 그가 가장 원했을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평소에 그랬듯이, 평소처럼 헤어지자. 그것이 그가 마지막에 받은 선물이다.
이 관점은 후회를 — 적어도 조금은 — 가볍게 만든다.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다면
가장 자주 나오는 후회 중 또 하나가 이것이다.
"마지막에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어요."
이 후회도 무겁다. 그러나 — 가만히 들여다보자.
당신과 그 사람의 평생 동안, 사랑한다는 말이 정말로 한 번도 오가지 않았는가? 한국식 가족 관계에서는 — 그 정확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다. 그 대신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 매번 챙겨준 식사
- 출근길에 챙겨준 우산
- 이유 없이 사다 준 작은 선물
- 늦게 들어올 때 마중 나온 발걸음
-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 시간
이 모든 것이 — 사랑한다의 다른 표현이었다. 정확한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 그 사랑은 평생 흐르고 있었다.
그가 그 사랑을 받지 못했을까? 그는 받았다. 단어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받은 사랑은 — 단어로 받은 사랑보다 흐릿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다.
그래도 후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이야기를 들어도 후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회는 머리로 풀리는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 자리를 옮기는 것에 가깝다.
다만 한 가지를 권하고 싶다.
당신이 그날 못 한 말을 — 지금 해보라.
마음 안에서, 글로, 혼자 있을 때 입으로. 그날 너에게 못 한 말이 있었어라고 시작해보자. 그리고 그 못 한 말을 — 지금 다 해보자.
상대가 듣지 못한다고?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 당신이 그것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 행위 자체가 — 당신 안에 박혀 있던 후회의 가시를 천천히 빼낸다.
마음 안의 대화는 늦지 않다. 떠난 사람은 — 우리 안에 살아 있고, 우리는 그에게 — 지금도 말을 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과 그 사람의 마지막이 평범했다면 — 그것은 사랑이 부족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충분히 일상이었다는 증거다.
영화 같은 마지막은 — 영화에만 있다. 진짜 사랑은 평범한 마지막을 가진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다.
그러니 그 평범한 잘 자라는 마지막 인사를 —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인사 안에는 평생의 사랑이 압축되어 있었다. 그 사람도 그것을 알고 떠났을 것이다.
당신이 평범하게 살았다는 것 — 그것이, 당신이 진짜로 사랑했다는 가장 큰 증거다.